A. 첫째, 다음을 비롯한 포털사업자 등에게 결속력을 과시해서 어떤 측면에서는 향후 협상력에서 강한 위상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둘재, 이런 상황에서 포털의 수세적 국면은 정치적, 법률적, 산업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언론사가 유리한 방향의 협력과 비즈니스가 이뤄질 공산이 그만큼 커졌습니다.
그러나 실리를 챙길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첫째, 계약 관계를 파기한 부분에 대해 (다음이 일부 언론사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위약금을 청구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둘째, 이번 조치가 언론-포털이라는 산업적, 저널리즘적 이슈가 아니라, 뉴스 소비자와의 관계, 정치적 문제 등과 결부돼 있어 심각한 반조중동 대열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의 경우 언론사의 공급중단이 갖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런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시장은 여전히 조중동의 다음 비판을 주목하게 될 것이고 주가에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간을 끌수록 다음이 불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이 적극성을 보이며 재협상에 나설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상황이 조기에 매듭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중동 이외에 뉴스 공급 중단에 나선 매체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이용자 서비스 채널을 부분적으로 재정비하면서 언론사의 움직임을 관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뉴스 소비자의 선택과 여론이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입니다. 또 상당수 부분은 다음의 몫이 됐습니다. 조중동은 빼 든 칼을 쉽게 접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쉬운 점은 전통매체 일부가 아직 인터넷 시장과 뉴스 소비자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점입니다. 뉴스 소비자와 소통하지 못하면서 비즈니스를 논의하고 있는 점이나 강경 조치를 취해야 할 상대와 시점에는 정작 단일한 행동을 보여주지 못한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경영적, 정치적 판단이 얼마나 설득력을 갖게 될지는 의문인 것입니다.
1. 죄송합니다. (0:00) 2. 미디어다음의 공지사항 (5:20) 3. 기사중단 관련 법적 이슈 1) 계약 위반 문제 (9:38) 2) 담합 문제 (16:46) 4. 조중동은 왜 기사를 중단하나? (20:28) 5. 조중동의 기사중단이 가져올 파장은? 1) Daum (38:56) 2) 조중동 (49:49) 3) 네이버 (55:30) 6. 누가 이길까? (59:08)
황의홍 소비자의 리콜 요구에 “물건 안 팔아”를 외치며 해당 유통망, DAUM 폐쇄로 맞선 조중동을 일컽는 말 △사진/한겨레21 윤운식 기자 시청 앞 촛불 시위대가 조중동을 향해서 매일 반성을 촉구하고 있는데 반성하고 개선하겠다는 말 대신에 “싫으면 관두라고” 정면으로 누가 힘이 더 센지 보자고 힘의 논리를 선택하고 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
언론인권센터(이사장 안병찬)가 26일 오후 서울 인사동 관훈클럽 세미나실에서 '촛불에 나타난 1인미디어의 발전방향'을 주제로 제3차 언론인권포럼을 개최했다.
'아프리카'를 통해 생중계된 토론회에서 '광고주 불매운동'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피력한 나는 플로어 방청객과 인터넷 시청자들로부터 비판적 질문을 듣게 됐다.
이날 토론자로서 이야기한 것을 정리하기에 앞서 그 부분을 해명하려는 것은 '본의'가 잘못 전달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광고주 불매운동이 의미있는 소비자 운동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널리즘의 문제를 안고 있는 전통매체를 향한 소비자 운동은 긴 싸움이다.
좀 더 항구적이고 체계적인 미디어 운동이 병행되거나 후속적으로 나와줘야 한다. 촛불시위가 그런 필요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시각에서 보완 또는 변화의 화제를 꺼낸 것으로 이해해주시길 당부드린다.
[토론 요약]
촛불집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앞으로 어떻게 진화해 갈지 예측할 수 없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촛불집회에 대한 과도한 미화나 지나친 절하 모두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촛불집회 과정에서 생산되는 콘텐츠들은 종전의 규칙, 격식, 관행을 뛰어 넘고 있어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과연 어떤 긍정적인 역할과 의미가 있는지 차분한 점검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물론 현재 이 시점에서 촛불집회에 대해 우리가 의견을 일치시킬 수 있는 것은 있다.
예를 들면 스트리트저널리즘이 번성하게 된 것, 온라인 담화가 오프라인과 일치하고 있는 것, 조직적이고 전업적인 시민운동에서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시민운동으로 패러다임이 이동한 것 등을 꼽을 수 있다.
또 시위 그 자체에서 문화적인 코드, 계층의 특성을 읽게 됐다는 점에서 단지 정치적, 사회적 측면으로서만 기능했던 시위의 성격이 변화한 것도 지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촛불시위는 전통매체에 대한 1인 미디어 즉, 뉴스 소비자들의 만연한 불신과 분노를 폭발시켰다.
이밖에도 이번 촛불시위 과정에서는 개인이 떠 올랐다. 아날로그 시대(20세기)는 군중이 중요한 이슈였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담화의 발화점이 됐다.
그렇게 급부상한 개인의 실체는 멀티미디어 스킬, 인터넷 이용능력, 소통의 적극성 등으로 압축됐다. 특히 그 개인은 전통매체와 거리감을 갖는 단순한 관찰자로서가 아니라 현장의 기록자로서 전통매체와 대등한 경쟁을 이끌었다.
이들에 의해 온라인 여론과 오프라인 여론은 비로소 일치가 됐다. 1인 미디어 세대가 주도한 촛불시위야말로 20세기가 곳곳에 금 그어 놓은 '경계'를 붕괴시켰다.
특히 그 과정에서 전통매체에게 주는 메시지는 강력했다고 본다.
우선 전통매체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을 직접 체험하고 있는 것은 과거보다 더 생생하다. 여론의제 설정력을 잠식당한 전통매체가 마지못해 촛불의 요구를 수용하는 등 수세적인 소통으로 전환한 것도 그 덕분이다.
그러나 뉴스룸과 기자들의 업무 내용 즉, 보도 내용에 근본적인 변화의 재료로 전환되고 있지는 못하다.
전통매체 뉴스룸이 아직도 촛불을 일과적이고 단발적인 소동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매체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나 불신이 아니라 뉴스에 대해 구체적이고 지속적으로 집중하는 소비자 운동으로 전환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현재 집중되고 있는 것은 광고주 불매운동이다. 직접 피해를 입고 있다는 일부 매체들이 포털사이트나 광고주들에게 협조를 요청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불매운동이 소비자 운동인지 아닌지, 기업의 영업행위를 방해하고 있는지 아닌지 법리적인 논란이 있다. 방통심의위원회의 최종 결정 보류도 그런 맥락에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소비자 운동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광고주 대상의 운동의 목적이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먼저 광고주들도 홍보효과가 있는 매체를 선별해서 광고를 게재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어떤 사안에 대해 바람직하지 못한 보도를 하는 매체라고 해서 네티즌이 그 매체에 광고집행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또 그러한 광고주 불매 운동으로 인해 특정 매체가 영업에 손해를 입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원래 이 운동이 시작된 원인인 보도 내용의 변화로 연결되느냐 하는 점도 짚어봐야 할 것이다.
더구나 광고주 불매운동의 결과는 전체 신문산업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촛불시위 참여자들이 지적하는대로 사실 관계를 제대로 전하는 매체와 그렇지 않은 매체 사이에 이 운동의 여파로 분명한 우열이 발생하기보다는 전체가 공멸하는 기류가 조성되기까지 한다. 신문과 광고시장에 대한 냉정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개인 미디어가 매스 미디어를 역진할 것이 확실시 되고, '혁신' 없는 올드미디어는 도태하게 돼 있다. 그 혁신 중에는 통합뉴스룸, 멀티미디어 생산 등이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소통'이라는 부분이다.
소통않는 매체는 새로운 미디어 패러다임에서 성공할 수 있는 동력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결국 전통매체도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블로거를 비롯한 인터넷 이용자들이 언론 즉 전통매체에 대해 가진 불신과 비판을 좀 더 슬기롭게 전개할 필요가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촛불시위 전 과정에서 나타난 전통매체에 대한 혐오, 비판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운동이 격화할 경우 자칫 전혀 본질과는 다른 갈등과 경쟁을 조성할 우려가 있다. 촛불시위는 소통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불밝힘이었고, 그 불밝힘을 제대로 전하지 않는 언론에 대한 뜨거운 입김이었다.
촛불과 정부간의 줄다리기가 어느 정도 진정되는 상황을 봐 가면서 광고주 불매운동 같은 캠페인 보다는 다른 차원의 항구적인 미디어 운동이 조직화되길 기대해 본다.
예를 들면 전통매체가 발신하는 콘텐츠에 대해 더 집중된 비평과 반론이 확산될 필요가 있다. 광고주 불매운동 보다 뼛속 깊숙한 성찰의 재료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미 뉴스룸과 기자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대체하고 나선 블로거들에게 경외감을 갖기 시작했다. 물론 전통매체는 20세기 번성기와는 다르게 여러가지 산업적인 측면에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또 뉴스룸 내부에는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기자들간 감정적, 이성적으로 대립하기 시작했다. 기자들 스스로도 촛불시위를 통해 성찰적 체험을 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더 확산시키기 위해서도 블로거들의 콘텐츠 비평 운동이 요청된다. 모든 책임을 블로거들에게 맡기는 염치없는 제언이지만 그것이 권위적인 국내 뉴스룸과 기자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스트리트저널리즘(street journalism)' 시대의 미디어 운동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촛불집회에서 나오는 목소리들을 제도화, 시스템화하는 방법들을 찾는 사회적인 후속 작업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전통매체도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촛불을 들게 된 데에는 전통미디어가 제대로 여론을 수렴하지 못한 점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촛불집회는 전통매체 본연의 책임에 대해 돌아보게 한 점이 분명히 있다. 아직도 그 부분을 받아들이지 않는 전통매체가 있다면 준엄한 심판과 퇴보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덧글. 토론장에서 만난 열정적이고 순수한 블로거들의 노력과 헌신은 눈물겨운 것이었다. 반성한다. 책임을 느낀다. 그리고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촛불시위를 계기로 그동안 블로그에 대한 기존 미디어들의 냉소적 평가가 바뀌었다는 점이 큰 변화라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제법인데' 정도였는데 인식이 바뀐 것이죠."(블로거 '거다란') "블로거뉴스 기자 자격으로 촛불시위 현장을 취재했지만, 여건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명함을 프레스카드 대신 내밀어야 마지못해 취재를 막지 않는 정도였죠. 일반 시민으로 서 있을 땐 나를 얼마나 함부로 대할 지 생각하니 씁쓸하더군요."(블로거 '창천항..
Q. 1987년 6월 항쟁과 2008년 5~6월의 촛불집회를 비교할 때 미디어 지형은 어떻게 변화했다고 생각합니까?
A. 20세기는 주류 언론이 정보를 독점, 선별하는 시대였습니다. 당연히 시민과 미디어가 소통의 창구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21세기는 인터넷과 같은 쌍방향 미디어들이 정보를 다양히 편재함으로써 시민 스스로가 미디어가 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시민이 전통 매체를 조정하는 상황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물론 일반론적이지만 매체 수도 양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인터넷신문 등 새로운 매체도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민 기자도 출현했습니다.
또 내용적인 변화도 있습니다. 뉴스 콘텐츠(정보)가 게이트 키핑이라는 종래의 전통 저널리즘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특히 텍스트 위주의 뉴스도 비디오, 이미지 등의 포맷으로 생산, 재가공되고 있습니다. 정보 생산 및 반응 속도도 실시간에 가깝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또 정보를 소비하는 대상, 정보를 유통하는 영역도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로 전이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미디어가 정보를 좌우하는 시대에서 소비자가 정보의 주역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당연히 다양한 현안에 대해서 전통매체의 여론 선제권이 실종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Q. 요즘 언론사 뉴스룸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A. 최근 신문 편집국 분위기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한 신문사 편집국 간부는 요즘 편집국 주인은 '다음 아고라'라는 자조섞인 말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네티즌들이 광고주를 대상으로 활발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어서 곤혹스럽다는 것입니다.
촛불집회 참여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한 신문사는 노동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최근 촛불집회 관련 보도 평가를 진행했는데 자사 논조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절반 가까이 나왔다고 합니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뉴스룸이 뉴스 소비자들에 의해 유린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
그러나 전통 매체 내부는 여전히 20세기적 관행과 시각이 지배하고 있어서, 새로운 조류와 관점으로 뉴스룸을 디자인하려는 신진 기자들과 부조화하는 양상이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도 뉴스룸이 시장과 소비자들로부터 충돌하고, 내부의 신진 기자들과도 불화하는 양상이 지속되는 등 불편한 풍경들이 계속 펼쳐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자협회보 6월11일자 7면
Q.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 일부 언론들이 독자들을 계도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아닐까요?
A. 그렇습니다. 전통 매체도 정치권처럼 소비자들과 소통을 잘 하고 있지 못합니다. 과거의 뉴스 생산 패러다임이 여전히 유효하고 절대적이기 때문에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하며 그를 통해 생성되는 영향력 역시 자신들의 전유물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 포털뉴스의 독주처럼 이미 새로운 시장과 소비자들은 언론의 독주를 용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언론사의 유통전략 실패로 보는 산업적 해석은 가능하겠지만, 분명히 뉴스를 선택적으로 소비하고 재유통하는 권력은 소비자에게 넘어 왔습니다.
때문에 전통매체가 시장과 소비자들을 어떻게 바라 보는가, 특히 대등한 파트너로 대우하는가에 의해 미디어 지형이 급격히 재편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정치적 측면과 결부된 한국 언론 시장의 특수성이 있지만, 뉴스 소비자의 파워가 커지고, 지식대중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과정은 점점 뉴스룸이 일방적으로 뉴스를 생산하는 전통적 체계를 조롱하게 될 것입니다.
Q. 20세기와 21세기는 과연 어떤 차이점이 있기에 뉴스룸이 그러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것입니까?
A. 정보(뉴스 콘텐츠) 생산의 독점권입니다. 또 정보를 분석하는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통매체에서 뉴스 소비자인 집단지성, 이른바 지식대중의 수중으로 들어왔습니다. 특히 오늘날은 정보가 더 많이 유통될수록 힘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그 권리 역시 소비자가 핸들링하고 있습니다.
이런한 21세기 정보 패러다임이 전통 매체가 더 이상 촛불집회를 좌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보가 생산, 해석, 유통되는 그 패러다임에 대해 아직도 전통 매체는 자신들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대한 경멸에 가까운 태도들, 이를테면 네티즌은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사람들쯤으로 치부하는 생각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인터넷은 스스로 좋은 정보, 합리적인 평가, 결속력있는 규합들을 통해 자정될 수 있다는 점도 외면합니다.
하지만 촛불집회는 전통매체의 판단력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습니다. 8~10만명 단위의 사이버 클럽들이 십시일반으로 광고비를 모았고, 광고주를 설득해 광고집행을 철회시키는 놀라운 '소통의 결과물'들을 속속 내놓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의 주인공은 전통매체가 아니라 뉴스 소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시각, 그들의 이해를 맞추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음에도-사실만 제대로 전하라는 것이었기에- 전통매체는 무시했습니다.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한 신문사 간부는 이것은 영업 방해 행위가 아닌가, 광고 탄압이라면서 격분했습니다. 올해 상반기 국내 신문들은 자가발전하면서 되뇌인 신문산업의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10%나 광고매출이 격감하는 위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광고주들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언론사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기업들이 정상적이고 투명한 비즈니스를 한다면 두려워할 것은 언론이 아니라 소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촛불집회 과정에서 뉴스 소비자들이 조직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광고주 콜(call)' 캠페인은 한국 신문에게 심중한 위협요인이 되는 것은 자명한 상황입니다.
미디어오늘 6월11일자 3면
Q. 현장 취재에 나선 전통 매체 기자들 상당수가 봉변을 당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A. 기자들을 향한 뉴스 소비자들의 목소리는 크게 세 가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첫째, 기자들의 직업 윤리성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고 둘째, 전통 언론 산업 전반에 대해 불신하고 있으며 셋째, 이를 통해 전통매체와 뉴스 소비자간 소통관계가 치유 불가능한 상태에 빠져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자로서의 정체성, 자존심이 훼손된 것이지요. 사실 이러한 부분은 이미 인터넷-뉴스 댓글, 포털 강세 등에서 드러난 바 있지만 현장에서 많은 기자들이 함께 경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뉴스 소비자들이 한국 언론의 신뢰도를 근본적으로 의문하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에 대해 어떤 반론도 내놓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자성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Q. 그렇다면 촛불집회가 앞으로 한국 언론의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요?
A.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뉴스 소비자들의 격렬한 대언론 반감에도 불구하고 전통 매체와 기자들이 빠르게 변화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봅니다.
상당수 뉴스룸이 혁신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뉴스룸이 혁신되면서 나타나는 세 가지 일반적 특징은 첫째, 독자들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 비중과 지위를 갖는다는 점 둘째, 온라인과 같은 쌍방향 매체에 대한 투자가 지속된다는 점, 셋째, 기자들과 스태프들이 뉴스룸 바깥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관행이 정착된다는 점 등입니다.
하지만 독자 소통 부서조차 없는 뉴스룸이 대부분이며 주요 역량이 신문(프린트)매체에 집중돼 있고 기존의 뉴스룸의 가치를 고수하는 등 혁신에 장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통 매체의 업무, 조직 패러다임이 계속 관철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촛불집회를 통해 나타난 전통매체에 대한 소비자들의 경고 메시지가 뉴스룸의 변화로 이어지기에는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뉴스룸 변화를 희망하는 새로운 소통패턴을 경험한 젊은 기자들의 노력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직접 네티즌들과 소통하기 시작한 많은 기자들이 기존 뉴스룸의 관행에 의문을 품고 문제제기를 한다면 의외로 빠른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뉴스 소비자들 역시 일과적으로 그치지 않고 언론에 대한 비판과 격려를 지속할 필요가 있는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전통매체가 두려움을 갖게 됐다는 것은 중요한 변화이니까 말입니다.
덧글. 이 포스트는 9일 저녁 한 미디어 비평지 기자의 질문에 답변한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협상 파동으로 2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촛불문화제가 내일(10일) 최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촛불문화제와 관련된 다양한 분석들이 이뤄지고 있다. 국민축제, 참여민주주의의 회생이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선동과 광기라는 비판점까지 이 새로운 현상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이명박 정부도 시국문제가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 따라 크게 인사, 정책, 문화(소통) 등 세 가지 해법들을 궁리하는 듯이 보인다.
인사 문제는 ‘고소영, 강부자 내각’에 대한 불만부터 청와대 수석 등 일부 권력실세를 겨냥한 비판까지 보태져 최대 물갈이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국정 쇄신을 참신한 인물 중용으로 돌파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정책 부분도 고유가 대책에서 보듯 서민의 생활과 직결된 것부터 풀어가자는 취지다. 이 과정에서는 대운하 추진도 사실상 보류 또는 중단하는 뉘앙스를 담은 발언들이 되풀이 되고 있다.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질타에 대해서도‘눈 높이를 맞추자’는 자성이 일고 있다. 배후론부터 음모론, 괴담과 광기로 몰고 갔던 촛불문화제를 제대로 들여다보자는 인식도 적지 않다.
그러나 ‘노무현 책임론’, ‘재협상 불가론’ 등 종전 입장을 되풀이하거나 민심을 자극하는 발언들이 대통령과 권력층 일부에서 계속 나오면서 그 같은 해법들만으로 문제를 풀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더구나 종교계를 비롯 사회 각계 각층과 만남은 좋지만 인터넷 비접속세대인 올드보이(Old Boy)들과의 대화창구만 열렸다는 비판도 사고 있다.
이명박 퇴진론까지 확산 어려울 듯
이미 집회는 반정부 성격으로 치달을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있다.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10%대로 곤두박질쳤다. 일각에서는 정상적인 대통령직 수행이 어렵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이만한 사안이 대통령직을 걸만한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헌정질서’를 감안해 부정적인 발언을 한 바 있다. 쇠고기 협상 문제로 이 대통령이 사퇴하거나 탄핵되는 등의 일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는 일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을 고려할 때 아주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 다만, 앞으로 이명박 정부가 더 실책을 범해 만회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그것은 좀더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 예를 들면 국민의 다수 의사와 반(反)한 채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여론 제압을 하는 경우다.
일단 촛불문화제가 유권자들의 정치적 의식화로 흐를 수 있다는 점에서 보수세력에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당연히 원만한 방법들을 제시할 것이다. 특히 향후 계속되는 선거 등 정치일정을 고려할 때 빠른 시일 내 진정시킬 과제가 있다.
이 대통령은 아직 기회의 시간이 충분하다. 무지몽매한 방식을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일단 이명박 정부가 현재의 위기를 인사, 정책, 소통 등 세 가지 해법을 통해 풀어갈 것은 명백하다.
집단지성, 스스로의 문제 다루는 세대
이명박 정부의 등장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완연한 보수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지역, 전 세대에서 지난 10년의 집권 공과가 완전히 평가절하되는 국면을 맞았기 때문이다. 서울 및 수도권에서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압승은 진보세력에겐 회복할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집권세력은 불과 수개월만에 진보세력을 결집시키는 실착을 범했고 유권자층의 ‘정치적’ 관심을 증진시키면서 스스로 입지를 축소시켰다.
여기에는 두 가지 결정적인 착오가 있었다. 첫째, 촛불문화제에 참석하거나 배후에 있는 사람들을 소수의 이데올로기 진영으로 보는 부분이었다. 이것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보여줬던 군사독재 정부의 시각이나 다름없었다.
초기 사태 해결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정부와 간격이 벌어질대로 벌어진 촛불문화제는 자생력을 얻게 됐다. 군중들은 이 과정에서 정부의 쇠고기 협상 실패가 단지 쇠고기만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당연히 촛불문화제는 집권세력이 제시하거나 강조하고 있는 다양한 이슈들을 반대하는 쪽으로 흐르게 됐다. 대운하 건설 문제는 대표적인 것으로 향후 이명박 정부가 이 이슈를 다시 들고나올 경우 일어날 수 있는 문제는 지금보다 더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매체를 타격하는 미디어 운동
둘째,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무지였다. 현재의 집권세력은 20세기 미디어에 대한 이해도는 높은 편이지만 현재 펼쳐지고 있는 미디어에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고 보여진다. 현 집권세력 내부에는 인터넷 전문가가 전무하다.
또 오늘날 시민은 주류 언론과는 대척점에 서서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 이슈 메이커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집단지성이라는 점을 간과하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집단지성은 기득권의 오만함과 불손함을 비정치적으로 타격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80년대를 경험하지 못했지만 인터넷의 풍부한 콘텐츠로 간접경험하고 있다. 이들에게 공권력의 폭력성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물리력이다. 불법 과격시위 엄단을 강조한 정부 발표 이전에 자성론이 형성될 정도의 합리성을 갖추고 있는 그룹이다.
이들은 언론을 직접 비판하고 지원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역량을 갖췄다. 심지어 광고주들도 공략하고 있다. 시장의 길목, 중요한 고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21세기형 집단지성인 것이다.
지식인, 전통매체의 공동 책임
문제는 촛불문화제 전 과정에서 정부의 태도 변화가 크지 않아서 앞으로도 21세기 시민그룹과 ‘불화’할 것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다만 이들도 정부와의 관계,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정치화하는 능력은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한국 정당정치 더 나아가 정치문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소통의 사회화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촛불문화제는 과열양상을 띠고 있다.
물론 시민들이 정치사회적 소통 전 과정과 역량을 홀로 당당하고 있어 스스로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어렵다. 당연히 이들은 사회에 제기된 문제를 제도화하는데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모든 것을 책임지우려는 전통매체와 지식인은 사실상 자신들의 직무유기를 숨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일반적인 언론은 여론을 사실 그대로 수렴하면서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언론은 사실을 자의적으로 해석, 국민을 일방적으로 계도하려고 한다. 결국 이러한 전통매체는 영리한 시민들과 영원히 간격을 좁힐 수 없을 것이다.
또 지식인들 상당수도 기존 정치 시스템에 합류하거나 기생하려고만 하지 시민들과 연계해서 네트워크를 통해 대안그룹이나 생산적 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
20세기형 한국 보수정치 문제점 드러날 것
결국 위상과 역할이 높아진 집단지성과 집권세력이 격돌하는 상황이 계속될수록 이명박 정부의 단방향 소통 시스템 뿐만 아니라 20세기형 보수정치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이에 접근하는 보수 야당인 통합민주당의 경우도 뚜렷한 콘텐츠를 산출하지 못한 채 촛불문화제에 뒤늦게 가담하는 형국이다. 김대중-노무현 이후 뚜렷한 대중적 정치지도자를 내지 못하면서 지지기반의 심각한 이반을 겪었던 민주당이 촛불문화제 이후 어느 정도의 대안세력으로 재부상할지는 불투명하다.
대안없는 정치를 향한 시민의 선택은?
콘텐츠 경쟁을 한 것이 아니라 지도자를 중심으로 움직였던 정당운동의 한계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특히 촛불문화제를 둘러싸고 대통령의 지지도는 급락했지만 어느 정당도 뚜렷하게 부상하지 못하고 있다.
의회 구성단체에 대한 총체적 불신임은 정당제도, 선거제도 같은 한국정치 전반에 대한 냉소로 이어지고 있다. 복지제도 같은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개발도상국임에도 정치가 안정된선진국과 다름없는 투표율이 나오는 것은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시민의 정치 시스템 참여 거부는 한국적 보수정치를 향한 경고 메시지나 다름없다. 시민이 없는 정당, 투표 없는 선거는 결국 민주주의의 골격을 해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시민의 정치를 회복, 위기에 빠진 한국 정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역설적이지만 이명박 정부가 내놓았거나 추진이 예상되는 여러 공약과 프로젝트는 시민사회의 정치참여를 활성화할 요소들이 다분한 것들이다.
우선 대운하 개발은 이미 친환경, 생태주의적 관점의 반대 여론이 시장을 압도하고 있다. 또 의료보험이나 공기업 민영화 등도 제공되는 서비스와 기업의 경쟁력 제고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독점을 야기, 시민의 삶의 질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