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밀란의 구단주이기도 한 베를루스코니는 최근 자신이 소유한 TV채널 등을 통해 세계적 축구선수 미드필더 카카(Ricardo Izecson Santos Leite)가 AC밀란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정치를 말초적인 '쇼'로 전락시키고 선정적인 콘텐츠가 뒤덮여진 미디어가 총리의 실정(失政)을 엄호하는 형국이다. 이는 이태리의 부패한 사회상으로부터 대중의 망각곡선을 최고조로 앞당기는 역할을 하게 된다.
지난 20일 용산참사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촛불로 번질 것을 두려워하는 집권세력과 이 문제가 한국사회의 모순을 응축한 것으로 보는 시민사회세력간의 공방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야당 등에서는 첫째, 이명박 정부가 아니었다면 이러한 인명참사가 일어났을까 둘째, 용역직원들을 포함, 공권력 진압은 정당하고 적절했는가로 좁혀져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지난 일주일간 정부와 전통적 미디어 그리고 일부 지식인들은 점거농성을 벌인 세입자와 전국철거민연합회(이하 전철연) 회원들의 불법 폭력시위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론조작'과 같은 새로운 딜레마가 등장했다. 지난 22일 MBC <100분 토론> 인터넷 여론조사엔 경찰의 조직적 개입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청와대는 29일 정례 브리핑에서 "인터넷에선 과격시위 책임이 있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를 유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졌다"고 논평했다.
과거 전통적 미디어가 주도한 여론시장에서 인터넷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을 짐작케할만한 사건이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 이면에는 더욱 더 가공한 시사점이 있다. 단순한 여론조작의 가능성 못지 않게 정보가 유통되는 인터넷을 통한 민주주의에 대한 고찰이다.
인터넷이 왜 사람들에게 주목할만한 것들이 됐는지 그 배경을 검토하다보면 공통적으로 만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검색이다. 검색은 원하는 정보를 찾도록 해주는 엔진(engine)에 의해 최적화된다. 이 최적화한 검색은 사람들이 판단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인터넷은 하나의 채널이 아니라 수많은 채널을 모아서 한꺼번에 검색해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인터넷이 번창하면 할수록 검색은 모든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용산참사에 대한 시시비비, 정권의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자료, 그밖의 수많은 지표와 데이터들이 그것이다.
아무리 여론희석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위해 동원된 많은 인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인터넷은 좋은 정보를 중심으로 더 나은 토론을 이끈다. 그리고 그것은 결정적으로 엉성한 자료의 더미가 아니라 진실에 기초한 담론들이다.
검색은 이렇게 진실을 찾는 이용자들에 의해 더욱 향상된 기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검색과 검색이 적용된 경로로 이동하면서 이제 우리는 민주주의의 다원성, 다양성에 대해 안심할 수 있게 됐다.
물론 그 안심은 아직 이르다. 인터넷과 같은 열린 플랫폼을 통제하기 위해 무리한 시도를 해서라도 정비하려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일단 인터넷을 감독하는 것이 얼마나 소모적인가를 깨우치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등장했다. 또 (정부에 대해) 비우호적인 콘텐츠에 대응하기 위해 우호적인 콘텐츠를 양산하는 시스템을 축조하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를 판단해야 한다는 합리적인 진단도 있다.
이러한 견해들이 존재하는 것은 검색 때문이다. 검색은 콘텐츠에 대한 양적인 접근만큼은 정중히 사양한다. 또한 검색은 어떤 일방향적인 흐름을 사전에 차단한다. 검색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지식(정보)에 대한 갈망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검색을 통해 얻으려는 것은 객관성을 잃은 정보가 아니다. 그것은 신뢰도가 높은,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이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체계-하이퍼링크, RSS, 트랙백 같은 것들-로 탄탄하게 구조화된다.
이점에서 한국의 일부 보수매체가 네이버나 다음, 인터넷신문에 비해 신뢰도를 잃었고 지금도 '그러한 경향으로' 굳어지고 있는 것은 유의할만하다.
여기서 정부의 태도도 검증돼야 한다. 뒤늦게 인터넷 '정책홍보'에 나선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진정성이 결여된 '타율적 동원'의 흔적이 농후하다면 전통매체의 몰락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 좋은 정보와 나쁜 정보를 펼쳐 보인 뒤 이중에서 선택하도록 하고 그 정보가 다시 여러가지 길을 열어두어 다른 정보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검색과 그 검색의 경로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이미 인터넷 검색은 용산참사에 대해, 그리고 집권세력의 용산참사 접근방법에 대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엇이 정의이며 진리인지를, 그리고 무엇이 대안이며 교훈인지를 말이다.
예컨대 메타블로그 사이트에서 여전히 '용산참사'는 중요한 키워드가 돼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물망처럼 서로 다른 견해들과 연결돼 있다.
이렇게 검색 민주주의(Searching Democracy)란 현재 대중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 대중이 원하는 공정한 결과물들을 제시하고 그 결과물들을 토대로 논의하는 과정을 담보한다. 이 과정은 결국 참여적이며 쌍방향적인 통로를 통해 민의라는 것으로 발산된다.
이 검색에 최후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망각을 촉진하는 부산물들이 채워질 여지도 거의 없다. 지식대중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에 끝없이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이에 의해 검색은 끊임없이 민의를 반영하는 살아있는 생명체로, 사회적 산물로 자리매김한다.
발전하는 민주주의에서 검색은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 철학의 지평으로 승화한다. 검색시장을 장악한 포털권력이 이제 서서히 저무는 것도 그런 맥락 때문이다. 포털이 상업적으로 흘러가는 한 그것은 예상된 일이다. 비즈니스를 제패해왔지만 그 이상의 영역은 바꾸지 못할 것이다.
정치현실 속에서 다음 아고라도 변질됐고 네이버의 검색도 불량한 정보나 광고물들을 우선 제시하면서 시장의 우군들을 잃은지 오래다. 그대신 이제 검색은 지식대중에 의해 완연히 재창조되고 있다. 수많은 블로거들이 검색을 주도할 수 있는 창조적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실제 이들은 이 아이디어를 적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중앙집중화된 포털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여전한 한국사회에서 수많은 검색과 검색의 경로들이 봄의 대지에 피어나는 생명들처럼 번지고 있는 것은 검색 민주주의를 향한 축복으로 여겨진다.
물론 투명하고 합목적적인 검색기술에 대한 요구, 그러한 요구를 사회적으로 수용하는 제도적 장치들의 필요성처럼 검색에 대한 공공성 확보라는 주제는 이 시대의 엄숙한 화두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디지털, 네트워크 같은 초유의 용어들이 회자된지 10여년이 흘렀다. 세계의 변화는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어지고 있다. 그 덕분인지 검색 민주주의를 다루는 솜씨를 통해, 그것들이 구체화되는 인터넷을 통해 다시한번 한국사회의 대립과 갈등의 대치선을 볼 수 있게 됐다.
낙관적으로 들여다 보자면 그 대치선은 더 이상 나쁘지만은 아닐 것이다.
이를테면 용산참사는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인터넷에서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고, 검색에 의해 수많은 교훈의 콘텐츠들을 남길 것이고, 그것을 유용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의해 더욱 더 번져갈 것이고, 민주주의 그리고 철학 있는 정치적 리더에 대한 갈망을 대중에게 각인시킬 것이다.
그래서 (대중으로 하여금) 오늘날 향유하는 검색과 그것이 지향하는 그 어느때보다 명확하고 지혜로운 민주주의를 지지할 수밖에 없게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첫째, 지식정보의 과잉, 유사 지식정보의 범람 등 그동안의 지식체계가 감당하기에는 힘든 기술적, 문화적 쓰나미가 형성됐다. 지식을 건조하고 유통하는 양태가 변모했기 때문이다.
둘째, 전통적 지식그룹인 언론과 지식인들의 발언권이 지속적으로 축소됐다. 동시에 새로운 소통장치와 유통플랫폼을 수렴하지 못함으로써 그간 유지돼왔던 지식생산과 사회적 영향력이 후퇴했다.
셋째, 지식정보를 효과적으로 수집하고 재가공하는 집단지성의 힘이 커진 반면 이들과의 중재나 협업은 부재했다. 전통적인 지식생산 그룹들은 집단지성을 무릎꿇리는데 치중했으며, 집단지성은 언론과 지식인을 비판하면서 생기는 '평판'에 매료됐다.
미네르바 사태는 이같은 양측의 힘겨루기로 결국 상호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가능성이 짙다. 왜냐하면 양측은 물러날 곳이 없는 지점에서 맞닥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침체하는 전통적 지식그룹은 집단지성의 '불확실성', '불투명성'을 놓고 마지막 포화를 쏟아부을 수밖에 없다. 반면 집단지성은 권력과 전통적 지식그룹의 부당하고 부자유한 측면을 공론화하면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통해 '정당성'을 지켜내려고 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이 두 세력은 서로 다른 특질과 경향을 갖고 있어 '화해'의 접점을 형성하기는 아주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집단지성과 전통적 지식그룹의 비교
우선 집단지성은 블로고스피어나 다음 아고라 같은 ‘광장’에서 자신과 생각이 비슷하거나 다른 인터넷 이용자들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이들과 ‘친구맺기’를 통해 동질한 문화를 생산하고 있다.
이것은 주관적이고 정파적 의견의 형태를 띠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굳어진 것들은 아니다. 그러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든 영향력의 행사로 언제나 정제되지 않고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안팎에서 감수해야 한다.
반면 전통적 지식그룹은 가치중립적, 객관적(으로 포장되는) 식견을 공개적으로 발표한다. 이들의 주장은 자주 언론을 통해 인용되고 사회적 영향력을 획득해간다.
문제는 정치적 포섭과 동맹 같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 이들은 종종 변질되고 정치사회적인 무대로 전향(轉向)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들은 종전의 지식체계 내부에 의존하며 단계적이고 현학적인 수사에 매몰되기도 한다.
특히 지식인과 언론간의 협업이 주도한 20세기 지식생산구조에 대한 정면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때로는 산업적 위기담론에서 제조된다. 집단지성과 소통하지 않으면 전통매체의 미래가 없다는 전망 때문이다.
전통매체가 지식생산구조의 패러다임 변화를 제대로 수용하지 않고 여전히 전통적 지식그룹 체계에 놓인다면 정보의 생산은 물론이고 유통시장내 지배력, 부가가치 형성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당수 전통매체가 집단지성의 참여를 주요한 의제로 삼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언론계는 뒤늦게 착수한 집단지성과의 소통에 실패하고 있다. 그것은 언론이 집단지성과 제대로 손잡지 않고 단지 ‘걸치기’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전통적 지식체계에 의존하는 뉴스생산구조를 혁신시키지 못하고 있다.
결국 언론이 집단지성과의 소통관계를 정상화하지 못하면서 경영위기 구조의 심화를 자초하고 있다. 더구나 한국언론에 대한 집단지성의 근본적 불신체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더 이상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부분들을 신방겸영 등 산업적 측면으로 풀어가자는 의견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지식생산구조의 측면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는한 요원할 것이다.
그것은 정부의 역할모델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 지식인과 전통매체를 주요 파트너로 놓고 사회적 의제를 다뤄왔던 '웹1.0‘형 정부에서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웹2.0‘형 정부의 등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통의 변화양상이 과연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부호를 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미네르바 체포에서도 드러나듯이 정부가 새로운 지식생산구조를 다루는 방법에 대한 비판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인터넷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상당수 부처가 블로그 개설 등 변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 집단지성의 기대치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이버 모욕죄 도입 논란처럼 인터넷을 통제하려는 시도 때문이다.
그러한 접근이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집단지성과 더 많은 소통과 감동이 요구된다. 하지만 정부의 소통은 공직자 없는 ‘대행’ 소통, 열정 없는 ‘냉정’ 소통, 교감없는 ‘일방’ 소통에 그치고 있다.
웹 1.0 정부와 웹 2.0 정부
특히 정부가 집단지성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점은 우려스럽다. 인터넷의 발언자들을 이념적으로 관찰한다면 지난 10여년의 유산으로만 간주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집단지성은 전통적 지식체계보다 훌륭한 논쟁문화를 통해 편향적 참여자들을 ‘분별’하고 있다. 긍정적 부분을 더 많이 부각시켜서 생산성,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찾는 것이 인터넷 발전에 따른 사회적 기회비용을 줄이는 방법이다.
미네르바의 경우는 비록 ‘허위사실’ 유포의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지식생산구조가 낳은 ‘적자適者’이다. 미네르바로 상징되는 집단지성과는 제대로 된 소통이 필요하다. 미네르바의 신원을 알아내기 이전에, 체포하기 이전에 그와 인터넷으로 만난 정부의 감동적인 온라인 소통체계는 없었다.
미네르바에 대한 ‘처벌’보다는 ‘교감’을, 집단지성을 향한 ‘공격’보다는 ‘공존’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전통미디어 산업의 위기 가속화는 물론이고 권력의 위기도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이미 집단지성은 인터넷을 둘러싼 갈등의 본질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통제할 수 없는 인터넷에 대한 통제'는 결국 지식생산구조를 놓고 벌이는 전쟁이라고 할 것이다. 미네르바를 놓고 벌이는 격돌 속에서 부상하는 또다른 담화구조는 전통적 지식그룹과 집단지성 양자 모두에게 21세기의 소통 역량을 검증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미네르바'는 결국 정보 생산과 유통, 소통의 참여자들에게 '새벽'을 준 것이 아니라 해묵은 '과제'를 던진 셈이다.
덧글. 그리고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이 미네르바의 예측이 정확했는가 하는 점이다.
많은 경제 전문가와 언론들이 이 부분에 대한 과학적 검증 없이 허송세월을 보내다 결국 미네르바가 '희생양'이 된 측면이 있다. 상당수 경제 전문가들이 새로운 소통구조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오프라인의 지식인들이, 그리고 언론이 "잃을 것이 없는" 인터넷 논객들을 비방하고 인터넷 소통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식견을 표현하는데 아낌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DITOR'S COMMENT 천천히 RSS 피드 로그 겸 라이프 로그 식으로 설렁설렁 적어보려고 마음 먹었던 페이퍼 발행... 그런데 리더기의 글은 자꾸 쌓이고 스크랩한 글들은 넘쳐나고... 다시 한번 발행 정책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하루에 한번 꼴이라니요...OTL 진짜 이건 꼭 소개해드리고 싶다식의 알짜배기만 모을 것인지, 지금처럼 설렁설렁 RSS 피드 로그 식으로 생각날 때마다 기록할 것인지.. 발행 부수가 늘어나는 것이 웬지 부..
벌써 2년 전이다. 어줍잖게 '예언'이란 것을 했다. 원래는 이 글이 발단이 됐다. 2007/01/02 그만의 2007 블로고스피어 5대 사건 예언 이 글을 본 미디어다음 관계자가 블로거기자단 시상식에 나를 초청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로 강연을 해달라고. 그래서 예언서 비슷한 웃기는 짬뽕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었고 이를 이야기하고 공개했다. 당시 블로거들의 반응은 절반은 흥미롭다는, 또 다른 절반은 다 아는 이야기라는 식이었다. 이 예언서에 대한 일부..
황의홍 사법부 너 마저도 미네르바 구속을 보면서 인권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 너 마저도!“ 라는 탄식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법은 사회가 지켜야할 최소한의 규범이다. 법적용은 법적용을 하지 않으면 사회가 지탱할 수 없거나 개인의 권리나 이해관계를 보호할 수 없을 때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 옳다. 최종 판결 전 무죄 추정의 원칙에 의하여 불구속 수사를 점차 확대해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미네르바 구속은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리고 세계적인 망신” 이..
인터넷의 경제 예언자로 네티즌은 물론이고 신문, 방송 심지어 정부로부터 경외와 비난을 한몸에 받았던 미네르바가 사법부의 제단에 올랐다. 그의 발언은 대체로 경제상황을 적중시켰고 극적인 반향을 불러 모았다. 마침내 그의 존재는 전통매체와 경제학자의 역할에 무용론을 제기하며 신성神聖이 됐다.
세계적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정부의 능력을 두고 비판이 쏟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미네르바의 주장은 경험적이고 과학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어떤 의문을 다는 것이 부끄럽고 참담할 지경으로 한국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미네르바는 존재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그는 더 이상 익명에 숨을 수 없었다.
정부도, 언론도, 네티즌도 미네르바의 주위를 에워쌌다. 마침내 그에 대한 정보들이 나왔다. 전직 금융계 종사자, 50대 등 미네르바의 신상은 그 스스로에게도 부담이 됐던 듯 그는 절필을 거듭했고 그 과정에서 그 역시 과장되게 자신을 묘사했다. 그러나 현재 알려진 미네르바는 대부분의 예상을 벗어날 정도로 초라했다.
검찰에 검거된 미네르바가 우리가 알고 있던 그 미네르바라면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네르바는 그 일차원적 감정의 지평을 뛰어넘고 있다. 인터넷 여론은 벌써부터 (사법의 판단과는 거리가 멀 정도로) 대부분 탁월했으며 정확했던 그를 옹호하고 있다. 그를 가두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사실 지난 10여년의 인터넷 역사에서 익명의 사이버 논객이 지속적으로 사회적 파장을 불러온 이는 없었다. 그는 누구보다 집중했으며 그가 말한대로 이 모든 것이 대한민국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잃을 것이 없던 그의 사명감은 비록 '허위사실'이라는 냉혹한 법조문 앞에 창백해졌으나 미네르바의 '예측'은 여전히 생생하게 자리잡고 있다.
현재 그가 '불운의 예언자(prophet of doom)'가 될지 행운의 전문가로 귀환할지 알 수 없는 시점에서 미네르바를 둘러싼 공방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우리 모두의 미네르바를 잃지 않으려 한다. 경쟁의 정글에서 사투하는 이해관계자들을 제치고 왕성하며 날카롭던 그의 글을 계속 구독하려 한다.
또한 권력이 그를 심판하려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소통의지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제기하게 될지 모른다. '부정적인 의견이나 전망'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인터넷은 이 여파로 또다른 심원의 갈등이 번지고 있다. 미네르바로 인해서 인터넷이 고요해진다고 해도 그것이 국민이 원하는 '평화'는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정부의 소통은, 적어도 인터넷의 소통정책은 강요된 평화가 아니라 수많은 미네르바의 논쟁 속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미네르바가 영어囹圄에 갇힌들 한국경제는 숱한 위기와 도전을 견뎌야 하는 현실은 여전하다. 자신과 글을 일부 거짓으로 하였어도 그가 힘주어 말한 현실마저 포기해선 안된다.
10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이명박 대통령이 어려운 길에 놓여 있다. 세계적 금융위기에 흔들리는 한국경제를 원상회복하는 데만 최소 1~2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집권 기간 절반을 경제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경제 리더십 이미지 하나로 집권에 성공한 이명박 정부의 처지에서는 경제를 놓치면 모든 것을 실패하는 상황이라고 할 것이다. 이 상황을 역으로 해석하면 경제 이외의 것에는 대중이 무관심해져 상대적으로 행동이 자유로울 수 있다.
이 상황인식을 기초로 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경제영역을 뺀 나머지 국정과제는 초반부터 얼마든지 밀어부치기할 수 있다.
과거 김대중 정부는 IMF 체제를 넘어서는데 전력하다가 국가보안법 폐지 등 개혁입법을 실기했고, 노무현 정부는 권위주의 해체에는 일정하게 성공했으나 이른바 조중동 패러다임에 갇혀 개혁입법을 역시 마무리하지 못했음을 상기할 때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서두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집권 초부터 준비한 미디어 관계법 개정의 경우 방송, 인터넷, 신문 '장악의지'를 드러냈다는 야당, 언론단체의 비판에 직면하고 있으나 정부측의 관철 의지가 워낙 완강하다.
또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논의, 과거사위원회 정비추진방안, 4대강 정비사업 추진도 사회단체의 반발에 부딪히고 있지만 주요 의제로 실행되고 있다.
이러다보니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대화와 소통이 부족해 시민사회가 '촛불'을 다시 들고 나올 시한폭탄들이 계속 장착되고 있다는 비유까지 나온다.
하지만 경제침체가 장기화하면 대중적 관심은 정치영역에 고정되지 않는다. 인터넷 여론은 이명박 정부에게 상당히 부정적이지만 집권 이후 이뤄진 각급 선거의 결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났다. 민주당의 지지율도 10%대에서 고착화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경제침체가 질서의 안정을 강조하는 정부와 자본의 의지를 부상시키는 쪽으로 흐르고 있음을 상징한다. 이같은 경향은 대중으로 하여금 본질보다는 표면적인 분위기에 휩쓸리는 경향을 이끌어 간다.
재임기간 수개월에 불과한데 비판이 지나치다는 의견도 그러한 맥락에서 비롯됐다. 여기에 이 대통령이 추진하는 국정과제 중 일부는 진정성이 있다는 여론도 나온다. 수질개선이 시급한 4대강 정비사업의 경우 꼭 대운하와 연관지어 반대해야 하느냐며 지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안은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일삼는다는 보수진영의 개혁세력 비판론도 탄력을 얻을 조짐이다. 이에 따라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야3당 '민주연합' 제언도 정치권에서 현실화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지만 신통치 않은 반응이 터져 나왔다.
'김대중+김정일(DJI)' 연대라는 주홍글씨를 매긴 해묵은 헌사가 빗발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고스란히 경제위기에 주눅든 대중에게 밀려 들어간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정권교체 이후 대중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는 정치 담화자가 진중권 교수 이외에는 없다는 점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한국정치의 역설은 정당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지식대중의 산실 블로고스피어(다음 아고라의 미네르바 등)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지켜볼 대목이 있다.
- 이용자는 인터넷 규제 논의 과정과 별개로 기존 법제도(포털의 임시조치)에 의해서도 최근 직접적인 표현자유 피해를 자주 겪고 있음
* 2007년 정보통신망법 개정 이후 현재까지 임시조치 현황자료(최문순 의원실)에 따르면 다음의 상반기 삭제요청 증가폭이 네이버에 비해 크게 나타났음
[‘07년 하반기,’08년 상반기 임시조치 요청건수](단위:url건수)
구분
07년 하반기
'08년 상반기
증감율
명예훼손
25,529
35,442
39%
초상권
1,795
3,539
97%
<자료: 네이버(naver)>
[‘07년 하반기,’08년 상반기 임시조치 요청건수](단위:url건수)
구분
07년 하반기
'08년 상반기
증감율
명예훼손
4344
6509
50%
초상권
1227
2098
71%
<자료: 다음(daum)>
* 다음의 경우 7월에 권리침해로 삭제요청을 받은 건 중에서 실제로 삭제처리한 건수는 1,471건으로 올해 전체 삭제건수의 53%에 해당(10월기준). 또 올 상반기 임시조치 요청건수 대비 평균 삭제율은 19%이나 7월은 50%에 이름
- 즉, 이용자들은 (기존 법제 하에서도) 정부의 강경 분위기에 편승한 포털이 앞장서서 임시조치를 취하고 있어 불만이 커지고 있음
- 특히 포털사업자들은 심의기관인 방통위의 삭제명령 또는 권고를 전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
- 네이버의 경우 임시조치를 요청받고 정통망법에 명시된 30일 이내에 당사자로부터 재개시 요청이 없을 경우 자동 삭제처리하고 있음
- 네이버 내규에 의한 처리결과 임시조치 요청게시글의 삭제율이 95% 이상임
* 이용자들은 망법 개정으로 포털의 모니터링 의무화, 피해자 요청시 무조건 30일간 가리는 조치가 이뤄지면 인터넷 게시글문화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고 있음
□ 인터넷을 둘러싼 상반된 시각
- 인터넷의 영향력이 커지면 전통매체의 위상과 기능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
-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정치사회적 연계 프로그램(전자투표제도 등)과 1인 미디어는 되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물결
* 인터넷의 긍정적 가능성을 믿는 쪽에서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고 확산시키는 진지로 하자는 기대감이 큰 상황
- 현재의 인터넷은 포털사이트 등 소수의 채널 집중도가 높아 시장의 왜곡이 있으며 자유가 지나쳐 방종으로 흐르는 인터넷 문화를 타율규제할 필요성이 있다는 시각도 있음
- 지금과 같은 인터넷 문화가 계속되면 사회적 일탈과 범죄가 양산되고 정치적 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음
* 부정적인 인터넷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오프라인 보다 더 강력한 가중처벌이 필요하다는 관점
- 양극단의 시각이 맞서면서 정작 사이버 토론 문화, 정보 신뢰성 구축 등 합리적 문화 조성과 같은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접근은 침체
* 즉, 이명박 출범 이후 인터넷 이용의 부작용을 해소하는 방법을 법률적인 측면에서 찾는 기능론적 해법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
□ 대안은 무엇인가?
- 제한적 본인 확인제 확대 실시가 악플 등을 해소하는 근본적 문제는 아님
* 사실상의 실명 확인을 거치고 있는 주요 포털사이트의 경우 소수의 악플러들을 억제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 기법들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 (예) 1인 1 ID, 악플피신고횟수 기준 초과자 일정기간 게시 보류, 주요포털간(현재 제한적 본인확인제 실시 사이트) 블랙리스트 공유
* 전면적 실명제 도입 주장도 나오고 있으나 그것은 (미국 등에서 보듯) 국가가 아닌 온라인서비스제공자와 이용자간의 계약(약관)에서 규정할 부분으로 인터넷 서비스에 국가가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어 ‘장악’, ‘지배’의 의혹을 불식하기 어려움
- 반의사불벌죄 등 가중처벌 성격의 사이버모욕죄는 민주국가에서는 유례가 없는 입법 논의로 실제 도입 여부는 신중할 필요가 있음
* 정보통신망법 또는 형법에 두느냐 여부도 논란이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가 등에 의해 악용될 우려가 있는 만큼 보완책 마련이 절실
* 일부에서는 이 법 도입을 촉발하게 된 데에는 (국가가) 故최진실 씨의 자살의 원인을 모욕(명예훼손 악플)에 두려 한다며 이는 지나친 비약이라고 지적. 즉, 자살은 본질적으로 개인의 책임 범위에 있는 데도 이를 사회적 타살-악플로 몰아가려 한다는 것
* 형벌권 강화는 시민사회의 동의는 물론이고 과학적인 실증 조사를 거친 뒤 입법화하는 것이 순서
* 특히 모욕행위에 대한 구제절차를 법률적으로 전개하는데 있어 개인보다는 국가 등 거대 권력이 도맡아 전개할 수 있어 법안의 실효성도 의문
- 기존 정보통신망법, 형법체계로도 충분히 처벌하거나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만큼 장기적이고 문화적 접근이 요구됨
* 현재의 제한적 본인확인제의 효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서비스 규약들을 만들어야 함
* 인터넷 바로 활용하기 교육을 정규교육과정에서 확대 도입해야 하며 제도화 논의를 서두르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
- 미디어리터러시에 대한 사회적 관심사를 확대해서 교육, 문화, 언론 등이 함께 논의를 주도해야 함
- 한편, 최근의 인터넷 규제 입법 논의가 잇따르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포털사업자 등의 자율적 노력이 형식적이었기 때문
- 포털사이트의 다양한 여론 기능 서비스와 UCC 채널을 무분별하게 확대하는데 급급할 뿐 제대로 된 관리와 개선은 뒷짐
* 1~2년전 주요 포털사업자가 설치한 이용자위원회는 실질적인 서비스 개선, 인터넷 문화 정립과는 거리가 먼 임시적인 기구로 포털 방어막에 불과하다는 지적
- 메이저 포털사업자가 운영하는 각 서비스 영역의 수준과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실질적인 기능을 하는 연구기관을 신설
* 게시문화의 건전성, 생산성 확보를 위해 다양한 캠페인과 수혜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재원을 조성해 민관 협력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음
□ 다시 ‘인터넷’이 무엇인가?
- 인터넷은 미디어이기 이전에 생활 그 자체일 정도로 구분이 사라지고 있는 종합 서비스임
- 인터넷은 오프라인 공간과 다르게 개인의 자율성, 활동성, 독립성, 창의성이 뛰어난 곳인 만큼 이러한 가치를 장려하는 원칙이 중요
- 인터넷 또는 포털을 제도화하려는 것은 이것이 오프라인의 ‘질서’에 영향을 미칠 만큼 성장했다는 반증으로 분명 긍정적 부분과 부정적 부분이 존재함
- 최근 규제논의는 부정적인 부분을 부각시켜 재단하려는 것으로 인터넷의 잠재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음
- 특히 인터넷에 대한 기존 전통미디어의 부정적인 보도태도는 질적 경쟁이 아닌 정치를 동원한 압박을 행사하려는 것으로 비겁한 태도
- 인터넷 또는 포털의 순기능을 더욱 활성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역기능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음
* 인터넷 여론조사를 과학적, 객관적으로 설계(IP(대역폭 감안)당 1표제)해 여론을 확인하는 장으로서 오류가 없도록 하고 언론보도로 신뢰의 틀로 정착
* 우수한 인터넷 게시글에 대해서는 언론, 교육기관, 시민사회단체, 정부부처 등이 영역별로 시상하는 등 ‘담론’의 생명력 확보
-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이용자 중심의 모델을 추진하되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알고리즘을 설계해 사회적 리스크를 줄여 나가고 이를 외부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에 검증받는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음
* 예를 들면 특정 인터넷 게임의 사행성, 중독성 여부를 실증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정기적으로 공표하며 발견된 문제점과 개선점을 서비스에 반영하고, 정부는 제대로 검증, 개선한 인터넷 기업에게 세제혜택 등의 인센티브를 지원
□ “모든 인터넷 관련 제도는 이용자 관점에서 시작해야“
- 인터넷 이용자들이 제한적 본인 확인제 더 나아가 전면적 실명제를 표현자유 침해의 요소가 있다고 받아들이는 한 그것은 지속적인 갈등의 요소로서 위헌시비에 노출되는 불완전한 법률로 이른바 21세기의 국가보안법이 될 수 있음
- 인터넷 이용자들이 사이버모욕죄나 포털사이트를 앞세운 게시글 임시조치에 대해 ‘인터넷 이용문화의 개선’이라는 측면보다는 ‘정치적 음모’로 보는 한 인터넷상에 실효적인 성과로 나타나기 어려우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터넷 공론장의 ‘종언’으로 나타나 전체 여론시장, 민주주의의 퇴보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
- 인터넷 이용자들은 기존의 관련 규제도 지나치게 보고 있지만 개선점을 찾는 논의는 없고 또다른 강도 높은 규제 논의로 이행하고 있음을 못마땅하게 판단하고 있음
- 그러나 인터넷 이용자들 중에는 정부가 추진하는 인터넷 규제 입법을 지지하는 의견도 있는 만큼 일시에 모든 법률을 한꺼번에 처리하기보다는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음
* 현재 논의 중인 인터넷(포털) 규제 법률은 신문법, 언론중재법, 검색서비스사업자법, 저작권법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만큼 다른 법률과의 연관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함
* 특히 인터넷 이용자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전개중인 제도화 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은 상태로 입법화 전후 과정에서 새로운 갈등과 혼선이 우려되는 만큼 일괄처리보다는 이용자들의 수렴 여부를 봐가면서 단계적인 처리가 바람직
1. 국가가 침묵을 명령했다. 최근 아고라 경제토론방의 논객이었던 미네라바의 신원을 정부 당국이 파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신원 파악도 큰 문제지만 미네르바는 절필 선언을 하면서 핵심을 이야기했다. "국가가 침묵을 명령했다".... 인간의 열린 입을 통제하려는 자, 인간의 머리 속까지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다. 제 버릇 개 못준다더니 인간의 생각을 끄집어내어 좌파니, 빨갱이니하면서 국가보안법으로 잡아가던 버릇 못고친거다. 그래도 표현의 자유만은 어느..
노무현 전 대통령과 청와대 사이에 자료 유출 논란의 진위와 자료열람권 보장 문제 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논란은 전직과 현직 사이의 갈등이기 이전에 '노무현'이란 정치 지도자의 '봉하마을 이후'를 가늠케 한다는 대목에서 유의할만하다.
사실 봉하마을의 노 전 대통령은 친노 지지층에겐 지리적으로, 정치적으로 서울과 떨어진 터라 유감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일부 지지자들은 좀더 공세적으로 현실정치에 개입해주기를 내심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직접적인 현실정치 개입보다는 현재의 방식에 매료되는 형국이다. 즉, 봉하로 내려간 노 전 대통령이 유쾌하고 서민적인 행보를 펼쳐 보이면서 대중적 호감도가 재임중보다 오히려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 2.0 프로젝트가 본격화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적지 않다. 영남의 지역민 속에 뿌리를 내리면서 구현되는 생활정치야말로 진정한 미래 정치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물론 노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삶과 집권기의 행적은 현직 대통령과 곧잘 대비되면서 회자되고 있다. 밀어 부치기식 정치행태가 닮았다는 지적도 있고, 또다른 측면에서는 소통의 유무에 따라 상반된다는 평도 나온다.
한데 이제는 전·현직 대통령을 비교할 때 한 가지 더 우열을 가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최근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옛 친구를 만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은 한 마디로 노무현 콘텐츠의 강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당시 '눈물'을 흘렸던 영상이나 봉하마을에서 친구와 포옹하는 사진 역시 일관성을 갖는다. 한없이 인간적이고 따뜻한 느낌을 던지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메시지 그 이상의 '감동'을 준다고 주장한다.
노 전 대통령이 인간적이고 서민적인 이미지를 갖는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권위적이고 '차가운' 이미지다. 여기에는 이 대통령이 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박정희식' 모방과 뿌리를 같이 하고 있다는 진단이 곁들여지고 있다.
지난해 4월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 인공섬 팜아일랜드 건설 현장 방문 때나 2006년 10월 독일 방문 모습은 대표적인 이미지다.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이명박'과 밀짚 모자를 쓴 '노무현'은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표출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그러한 컨셉트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혹은 아직 극복이나 완화의 기미조차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일방적이며 지시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것은 이명박 브랜드의 심각한 정체(停滯)라고 할만하다.
특히 2개월여 이상 진행되는 촛불시위 과정에서도 이 대통령은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처신을 고수했다. 상호소통적이며 공감각적인 스토리텔링을 보여준 노 전 대통령에 비하면 콘텐츠 연출력이 크게 뒤쳐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노 전 대통령의 콘텐츠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말만 앞선다거나 형식적이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또 인터넷을 잘 아는 전직 대통령과 인터넷을 잘 모르는 현직 대통령 모두 아주 불명예스런 '별칭'이 따라붙는다는 약점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두 대통령 사이의 가치 지향이 아주 대조적이라는 점이다. DJ-노무현 콘텐츠에 유사성이 발견되는 반면 노무현-이명박은 극단적으로 벌어져 있다.
이때문에 현직 대통령에 대한 기대치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진하게 표출되기도 한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이 한국사회에 무엇을 기여했는가라는 냉정한 평가가 있기도 전에 추억에만 동조하는 사회는 결코 생산적이라고 볼 수 없다.
비록 노 전 대통령이 끊임없이 대중과 만나면서 감동을 주고 있지만 그것 이상으로 진화하기는 한계가 명백하다. 나머지 많은 부분은 이 대통령의 몫이다.
설사 이 대통령이 새로운 가치를 담는 콘텐츠를 제시할 능력과 태세가 돼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현실정치에서 그 해답을 찾는 노력이 요구된다.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역량과 위상을 사회화하기 이전에는, 그리고 그것을 일정하게 합법공간으로 견인해내기 이전에는 (부인하고 싶겠지만) 그는 역사의 전면에서 퇴임한 한 정치 지도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대통령의 분발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노 전 대통령의 장점도 수용해야 한다. '잃어버린' 10년의 프레임에 이 대통령이 동승해서는 절대 성공하는 대통령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21세기에 부합하는 가치와 철학을 제시할 역사적 책무가 있어서이다. 그가 단지 어떤 정당의 지도자가 아니라 국민의 지도자임을 지향하는 한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감동'을 주고 있다면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감동의 콘텐츠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지난 수개월여의 집권기간에 대한 통절한 성찰의 기초 위에 설 때 가능하다. 그래야 국민은 이 대통령과 현 정부에 감동할 준비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덧글. 이명박 대통령의 사진은 각각 2007년 4월 아랍에미레이트(UAE) 두바이에 들러 인공섬인 팜아일랜드 건설 현장을 방문했을 때와 2006년 10월 독일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 사진 출처는 각각 뉴시스와 중앙포토의 것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은 노무현 공식 홈페이지의 것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늘 기록열람과 관련해서 이명박 현 대통령에게 장문의 편지를 날렸다. 내용이야 전임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기록조차 편하게 열람할 수 없는 제도에 대한 개선과 이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임대통령에 대한 예우문화를 만들겠다는 말과는 달리 실제론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일종의 항의문이었다. ㅇ[전문] 盧전대통령 '이명박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 여튼 노 전대통령의 현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한 이 편지는 짧은 기간내에 실정에 실정을..
현재 신문등자유와기능보장에관한법률(이하 신문법)에 따르면 컴퓨터 등 정보처리능력을 가진 장치와 통신망을 이용, 정치·경제·사회·문화·시사 등에 관한 보도·논평·여론 및 정보 등을 전파하기 위하여 간행하는 전자간행물로서 독자적 기사 생산과 지속적인 발행이 이뤄질 경우 ‘인터넷신문’으로 정의한다.
이 경우 포털은 “독자적인 기사 생산을 위한 요건으로 취재 인력 2인 이상을 포함하여 취재 및 편집 인력 3인 이상을 상시적으로 고용하고, 주간 게재 기사 건수의 100분의 30 이상을 자체적으로 생산한 기사로 게재할 것” 등을 충족하고 있지 않아 언론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었다.
“포털 언론화 논의 시동”
그러나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뉴스를 유통하는 모든 인터넷 사이트도 언론에 포함하는 방안을 강구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포털의 언론화 논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한 소송, 반론보도 청구, 손해 배상이 포털로 쏟아지는 것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즉, 포털이 기사를 생산하지는 않지만 뉴스를 배열하고 위치를 정하는 등의 편집에 따라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문화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주무부처에서 포털 규제를 전방위적으로 입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포털 규제 논의가 불붙게 된 것은 포털이 뉴스를 재매개(remediation)하면서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취재, 편집, 보도 등을 모두 포함해야 하는 전통 저널리즘의 잣대로는 도저히 언론이 될 수 없지만 전달과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뉴스 생산 못지 않은 파급력을 확보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뉴스유통과 배치만으로도 영향력 확보
사실 포털 저널리즘은 완전히 새로운 저널리즘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선택권을 높이는 뉴스의 배열 및 속보 중심의 서비스, 무정형의 뉴스가 확산되는 포털의 유통방식은 전통 매체가 일방적으로 정해 놓은 뉴스와 형태를 좇아야만 했던 시대를 종식시켰다.
포털은 이를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춘 뉴스 서비스라고 표현한다. 또 공공재인 뉴스 소비를 확대시켰다고 주장한다. 독립형 인터넷 신문도 전통 매체와 동등하게 놓고 서비스하면서 과거에 유지되던 언론 시장 질서는 무가치하게 됐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맞게 다양성이 확보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공공적인 뉴스보다는 연성뉴스 위주의 편집으로 선정주의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경제적 이익에 주력하는 포털사업자의 특성 때문에 뉴스의 상업화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클릭을 높일 것인가를 고민하다보니 옐로우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으로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상업주의와 사회범죄 온상
특히 뉴스 댓글을 기계적이고 사후적으로 관리하면서 명예훼손 사례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최소 하루 5천건이 넘는 기사를 관리하는 포털 뉴스의 속성상 제대로 된 모니터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언론사가 전송한 뉴스를 단지 유통할 뿐 그 콘텐츠에 대한 신뢰도까지 담보할 수 없는 포털 입장에서는 오보에 따른 간접책임도 피할 길이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포털뉴스의 폐해가 사회문제로 빈번하게 이어지면서 규제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근 촛불시위에서도 드러나듯 인터넷이 이슈화하고 전통언론이 확산시키는 역의제 설정 흐름이 아예 정착하는 양상이 계속되자 포털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의무 부과에 대한 의견이 거세진 것이다.
또 포털이 서비스의 중립성을 지향한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정보통신망법 등 외부 요인에 의해 과도한 게이트키핑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게시글 등에 의해 권리를 침해받은 자가 포털측에 삭제 또는 노출 차단 등의 임시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포털의 이중성, 표현 자유 위기 빠트려
만약 포털이 이 과정에서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권리 침해자에 대해 피해 보상을 해야 하는 만큼 문제가 될만한 게시글은 아예 차단하고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포털이 앞장 서서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포털의 중립성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자의적 편집은 유지하는 이중성도 여전하다. 한쪽으로는 서비스제공사업자로서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이용자들을 손쉽게 희생시키고, 또 다른 쪽으로는 규제장치는 포털의 중립성을 훼손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항변하는 것이다. 포털의 정체성이 헷갈리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논란들은 결국 최대 포식자인 공룡으로 성장한 포털 서비스에 대한 규제와 참여민주주의와 여론 다양성의 보호라는 서로 다른 가치들을 충돌시키고 있다. 현재 포털규제 논의는 단순히 언론화 논의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헌법적인 문제와도 결부되고 있어 복잡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규제 논의의 핵심은 민주주의
우선 신문법처럼 기존 법률 또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포털의 영향력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러나 과거 법률로 규제할 경우 포털뉴스나 서비스를 제대로 범주화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편향성이나 영향력도 어떻게 규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뉴스 서비스 규제도 지나치게 세부적인 것에 개입하려든다는 점에서 쉽지 않을 전망이다.
포털을 언론중재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이미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에 있어서는 논란이 예상된다. 인터넷 매개 행위를 언론중재법으로 다루는 것이 적절한지 숙의가 있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새로운 제도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 또 이용자 보호 활동이나 저작권 침해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안전 장치 마련이 요구된다.
이렇게 포털 규제 논의들이 기존 법체계 중심으로 갈 경우 일정한 한계가 예상되는 만큼 포털의 자율적인 노력이 전면에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상업성을 지양하고 편파성을 불식시킬 수 있는 뉴스 편집 전문성을 위한 내부교육을 강화하거나 포털 뉴스로 집중되는 서비스 구조를 아웃링크 방식 등으로 전환하는 패러다임 변화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 포털 언론화 논의는 광범위한 인터넷 규제 논의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위험도가 높다. 일반적으로 정보 매개자의 책임을 강화하면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 및 표현의 자유 침해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또 뉴스 매개 그 자체에 책임을 부과하게 되면 유사한 사이트들도 향후 다양한 규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즉, 여론 다양성과 관계 법들간의 관계, 미래적인 법제를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포털 언론화 논의는 또다른 사회적 갈등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포털도 규제 논의에 대응하기에 앞서 신속하고 합리적인 대안들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특히 NHN이 네이버 뉴스 편집권을 부분적으로 개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가두기식 서비스를 근본적으로 혁신하지 못한다면 그런 조치들은 오히려 규제논의를 부추길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27일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누리꿈스퀘어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2008 오마이뉴스 세계시민기자포럼 '촛불 2008과 미디어 리더쉽' 마지막 세션 종합토론에 참석했다.
나는 이날 촛불 그 자체에 집착해서는 안되며 촛불 이후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부조리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소통단절과 왜곡의 체제에도 불구하고) 촛불에만 의지하고 안주(安住)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촛불 이후, 촛불의 사회화에 대해 숙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오늘 이 시각에도 서울과 전국에서는 '촛불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공권력과 마찰이 계속되면서 반민주 정권 심판으로 촛불의 방향이 바뀌는 점도 나타난다. 또 전통매체에 대한 반목과 거부는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 무슨 말을 하든 살아 있는 자들은 미안하다. 촛불이 한국사회의 위기를 상징하는 한.
아래는 이날 토론을 위해 사전에 준비한 메모를 재구성한 것이다.
[토론 요약]
촛불에 대한 의미 평가와 분석이 분분하다. 그런데 우리는 촛불 이면에 있는 그림자도 점검해야 한다고 본다.
2개월여 계속되고 있는 촛불에 대해서 사회 전체가 껴안는 노력이 부족하게 보인다.
정치와 전통매체만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우리 사회 전체에 과연 중재의 리더십이 존재하는지, 그런 콘텐츠가 있는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설득과 소통의 체계보다는 갈등과 대결의 기법이 정교해진 것은 아닌지 개탄스럽다.
지식인의 책임이 크다. 사회적 리더의 역할이 존재하지 않고 방치되는 것은 우려스럽다. 촛불로 대변되는 시민과 소통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정권의 능력과 성실성의 문제로 일시적인 이슈일 수 있다. 정치는 우여곡절이 있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 성장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촛불이 전하는 메시지를 사회화하는 노력이다. 매번 촛불을 드는 것이 대견한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촛불 그 자체가 아니라 대화와 숙의, 제도화의 틀에서 완성된다.
촛불에 안주하는 것은 안돼
물론 촛불은 내부에서 스스로 소통하면서 힘을 축적하고 있어 보이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
촛불은 도덕성과 비폭력성, 순수성이라는 가장 완결시키기 어려운 것들로 시작됐다. 촛불을 든 이유, 목적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경향이 훼손되면 언제든 촛불의 진정성이 무너질 수 있는 허약하기 짝이 없는 이미지다. 최근에 촛불 모습들에서 평정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촛불의 사회화가 필요하다. 촛불 이후 시민운동의 전열이 정비돼야 한다. 그것이 소비자의 가치를 꺼내든, 환경주의의 호소가 되든, 반신자유주의의 노선이든 간에 촛불이 아닌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한다.
촛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표정과 징후들을 정리해서 사회적인 네트워크로 확대해야 한다. 그것이 정당이든 시민단체이든 말이다.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을 처리하는 촛불 안주를 경계해야 한다.
미디어 리더십 변화는?
이번 시민기자포럼에서 촛불이 미디어 리더십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들이 있다. 틀리지 않는 진단이다. 전통매체는 (한때) 촛불에 백기를 들었고 촛불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지속적으로 정립될 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전통매체도 혁신이란 카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적으로, 문화적으로, 기자 스스로 변화를 절감하고 있다.
전통매체가 상처 입은 리더십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1인 미디어의 분발의 속도보다 빠르게 리더십을 만회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촛불의 과제는 영향력의 전환 그 자체가 아니라 한국 언론의 저널리즘에 깊이 다가서야 하는 부분이다.
뉴스 콘텐츠를 향한 지속적인 미디어 비평 운동이 제안돼야 한다. 이제 시작돼야 한다. 1인 미디어들이 해줄 수 있을 것인가?
전통매체는 어떻게?
그렇다면 전통매체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전통매체에 대한 뉴스 소비자의 거대한 거부감을 체험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일단 촛불의 요구를 마지못해 수용하는 등 수세적인 소통으로 전환한 것은 종전의 전통매체의 태도에 비해서는 놀라운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뉴스룸과 기자들의 업무 내용 즉, 보도 내용에 근본적인 변화의 재료가 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촛불의 본질보다는 폭력행사나, 건물훼손 등 일부의 문제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 이것은 또다른 불화와 긴장을 낳고 있다.
촛불의 참여자들과 거리감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상당한 기간 동안 디지털 미디어 세계는 세 개의 전선이 형성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통매체 뉴미디어(포털) 그리고 1인미디어들이다. 때로는 이들간에 협력도 유지되고 또한 갈등도 형성될 것이다.
누가 안전하고 훌륭한 공생의 모델을 만드느냐가 3자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일단은 전통매체가 뉴미디어와, 또 뉴미디어와 1인미디어간의 연합이 형성될 것이다.
뉴미디어는 전통매체를 압도하면서 성장할 것이고 1인 미디어도 나름의 영역을 지킬 것이지만 전통매체는 협력의 대상을 잃고 허둥댈 것이다.
한편으로는 1인 미디어와의 공존 패러다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혁신하는 전통매체 뉴스룸과 종사자들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장 문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풍경들 중 하나는 1인 미디어가 전통매체와 협업관계를 가지는 부분이다.
원대한 온라인 저널리즘의 길이 열릴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포털 '중립성' 이미 사라져
촛불이 켜진 2개월 동안 한국의 포털에 중요한 변화가 진행됐다. 시장 2위인 다음의 '아고라'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네이버는 주춤거렸다.
네이버는 해명글을 공지하는가 하면 뒤늦게 '촛불' 콘텐츠에 합류했다. 하지만 만연한 반네이버 정서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용자들은 이미 네이버에서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는 평가까지 내리고 있다. 네이버는 현재 서비스 개편을 통해 촛불을 돌파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가기구의 규제가 확대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 등에 따라 게시글에 대한 '임시조치'가 계속되고 있다.
다음도 스스로 검열을 확대하고 있다. 정보 유통자를 내세우며 중립적 정책을 내세우는 포털의 기만은 끝이 없다.
네이버가 중대 사안들에 대해 엄격하게 움직였다는 것은 스스로 중립성이 없는 것에 다름없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정치뉴스 댓글 일원화를 한 부분이나 촛불과 관련된 뉴스편집을 지나치게 신중하게 처리한 점은 '중립성'이 아니라 '친권력'형이었다.
다음이 더 이상 이용자들의 움직임이 아니라 정부의 입김에 따라 정책과 관리를 바꿔가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포털이 말하는 '중립성'은 철저한 상업적 이해에 다름아님이 드러나고 있다.
포털은 앞으로 더 강화된 규제조치들 앞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포털이 자의적인 편집의 패러다임을 벗고 완전한 이용자의 수중으로 작동된다면 국가의 규제가 발붙일 근거가 약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포털이 앞으로는 중립성을 외치고 안으로는 교묘한 치우침을 지속할 경우 국가의 규제와 동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결국 이용자의 표현자유 침해와 공론장의 위축으로 전개될 것이다.
촛불의 참가자들이 포털의 철저한 배신을 통해 더욱 거대한 공론장을 만들어 갈 것이라는 예상이 있다. 결국 우리는 촛불에서 새로운 세계를 향한 첫 걸음을 뗀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 정부 부처 일각에서 인터넷 규제 정책이 마련되고 있다. 촛불집회를 '결의'하고 '중계'한 인터넷에 피해의식이 쌓인 정부의 '과잉통제'라는 비판 못지 않게 부정확한 정보로 명예훼손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양산되고 있어 적정한 제어는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국가의 인터넷 규제 논란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라는 점에서 새로운 이슈는 아니다. 참여정부 당시에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에 따라 도입된 제한적 본인 확인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중심으로 빈번한 게시물 삭제가 논란이 된 바 있다.
그러나 이명박 출범 이후 포털사이트는 물론이고 인터넷 전반에 ‘규제 칼날’이 예고돼 있다는 점에서 사뭇 다른 양상이다. 우선 대포털 공세가 전방위적이다. 5월초 공정거래위윈회가 NHN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한데 이어 국세청이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야후코리아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뿐만 아니라 국회의 포털 규제책 도입 논의도 활발한 상황이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의 재발의가 예고된 '검색서비스사업자법'과 '신문법' 개정안은 한 마디로 뉴스 서비스를 포함 포털의 여론조성 기능을 억제하고 검색 광고 등 기업 영리 행위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지난해 마련된 이 규제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포털의 뉴스유통은 인터넷신문으로 정의된 상태에서 뉴스편집이나 배치, 제공규모 등의 자율성이 현저히 구속되는 상황에서 지속될 수 있다.
현재 포털은 신문법에 규정돼 있지 않고 공직선거법상 인터넷 언론사로 정의돼 있다. 그러나 현행 신문법 내 인터넷 신문 규정 요건 가운데 ‘독자적 기사생산’ 요건을 삭제함으로써 포털사이트를 인터넷 신문으로 정의하는 신문법이 통과될 경우 언론으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부여된다.
여기에 시민사회단체가 오래도록 반발해왔던 실명제도 급부상하고 있다. 즉, 2007년 주요 사이트에 제한적 본인 확인제, 즉 인터넷 실명제를 운영토록 한 것을 전면화할 가능성도 있다. ‘인터넷 실명제’는 하루평균 이용자 수를 기준으로 포털, 동영상UCC, 언론 등 36개 사이트에만 적용 중이다.
정부가 추진중인 인터넷 규제정책의 결정적인 문제는 인터넷을 통제 대상으로만 판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순간부터 인터넷 정책은 꼬일 수 있다. 일부에서는 최근 정부의 인터넷 규제 시사 방침들이 정치적 피해의식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고 그 실효성과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러한 분위기는 이명박 정부가 집권 이전부터 인터넷과 포털에 대해 보여줬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지식대중에겐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 캠프의 핵심인사가 발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던‘네이버 평정론’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17일 구속된 나우콤 문용식 대표도 촛불집회 생중계 기반을 제공한 인터넷 방송사이트 ‘아프리카’ 유명세 때문에 정치적 의도가 작용했다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문 대표는 5공때 학생운동으로 수감된 이력을 갖고 있는 등 참여정부의 권력 중추인 386 운동권과 인연이 닿아 있는 사람이다.
물론 포털이 언론으로서의 책임이 있다는 목소리를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포털을 중심으로 불거져왔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인터넷 글쓰기를 포함 전사회적인 사이버 교육 부재도 인터넷 불신을 키우는 하나의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지식대중이 인터넷을 활용하는 수준이 괄목할만하게 고양된만큼 규제정책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어려울 것이며 둘째, 포털뉴스의 중립성, 선정성 논란 등은 기본적으로 뉴스 서비스 제공자인 포털만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사가 빌미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관찰돼야 하며 셋째, 표현의 자유는 가장 우선시돼야 할 국민의 기본권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포털의 공론장 기능을 어떤 식으로든 폐쇄한다거나 블로그 등 개인 미디어의 활발한 소통을 차단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는 규제정책이 도입돼서는 안된다. 촛불집회로 지지도가 추락한 이명박 정부가 근본적인 해법을 찾기보다는 손쉬운 통제정책에 손대는 것은 제2, 제3의 촛불집회를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 개원 이후 신문방송 겸영, KBS 사장 인선, 언론단체 통합 등 미디어 환경 변화를 놓고 찬반 논란이 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디지털 포퓰리즘과 민심의 산실로 엇갈린 영예를 얻어가는 인터넷 여론이 어떤 물길을 잡아갈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더 말하기 싫을 정도의 유치한 대응이 나오고 있다. 인터넷은 독이고 실명제를 강화해야 하고 포털도 처벌해야 하고 허위 유포자도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몇 번에 걸쳐 이 문제에 대해 이 링블로그에서 쏟아낸 적이 있기 때문에 중언부언하지 않겠다. 민주주의를 훼손시키는 더러운 대응을 멈춰라! 일찍부터 알아봤지만 설마가 역시가 되는구나. 2007/10/19 한나라당의 경찰국가 지향 언론관 관련 글 : 2008/05/01 개인정보 유출, 원인..
(사)언론인권센터(이사장 <?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 안병찬 )는 미 쇠고기 문제로 촉발된 촛불정국에서 ‘웹2.0시대 새로운 형태의 시민저널리스트’로 맹활약하고 있는 1인미디어에 주목하여 이들의 역할과 의미를 분석하고 바람직한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언론인권포럼을 개최한다. 특히, 1인미디어가 취재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과 저작권법 위반..
얼마 전부터 제한적 본인 실명제가 주요 사이트마다 의무적으로 적용 되었습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얼마 전부터 네이버, 다음 등 주요 사이트에서 댓글 하나 쓰려고 해도 주민등록번호 인증을하셔야 합니다. 아마, 이런식으로 서비스 하는 곳은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서 유일 할 것입니다. 좀 다른 이야기를 하지면, 대학교 때 독립 다큐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지문 등록(?) 제도에 대한 고발을 다룬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에서 주장하는 것이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