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 매체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수용자가 생산자를 겸하는 최근의 미디어 환경 변화는 언론 산업의 역학관계에서부터 그 근본적 가치체계까지 새롭게 바뀌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다양한 미디어 간 공존방안, 언론의 공공성 개념 ‘진화’ 등 언론계에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창간 12주년을 맞아 신문·지상파 방송·케이블TV·인터넷 포털 등 주요 언론매체의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공익적 서비스와 상업적 서비스의 영역설정’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 간 균형발전’ 등을 논의하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일시 : 2007년 5월 18일 / 장소 :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
사회 : 이남표 민언련 정책위원
토론 : 김영철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콘텐츠사업지원국장
김지연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정책실장
이상요 KBS 정책기획센터 기획팀장
최진순 한경미디어연구소 기자
“미디어정책, 플랫폼 위주서 콘텐츠 중심으로”
미디어 격변시대,공공성과 공존공생의 길 찾기
이남표 민언련 정책위원·언론학 박사(사회): ‘미디어 산업에서 공익서비스의 영역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이야기하자면 제일 먼저 지상파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이상요 KBS 정책기획센터 기획팀장: 현재 지상파가 처해있는 상황은 크게 위태롭습니다. 첫째, 케이블TV와 위성방송이 국내 전체 TV시청가구 중 90% 가량을 차지합니다.
여기에 IPTV까지 들어오면, 1200∼1300개에 달하는 유료채널 속에서 불과 몇 개의 채널을 가진 지상파의 무료보편적 서비스는 고립될 우려가 있습니다.
둘째로,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상파에 대해서는 계열PP 송출제한, 편성규제, 방송시간 규제와 같은 ‘비대칭 규제’가 가해지고 있습니다.
셋째는 최근 타결된 한미FTA의 영향입니다. 우후죽순격으로 늘어나는 유료매체가 외국자본과 연계를 맺으면서, 이들의 기능이 강화되고 시장도 잠식되는 결과를 낳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이남표 박사: 그렇다면 지상파와 위성·케이블TV가 같은 선상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대칭 규제로 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인지요?
지상파 상황 위태로워
이상요 팀장: 지상파와 유료방송이 똑같이 경쟁하자는 것이라기보다는 지상파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미FTA 타결로 유료콘텐츠 시장이 개방된 상황에서 자체 제작역량과 유통역량을 갖춘 지상파를 과도하게 억제하는 정책방향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이죠.
지상파MMS 도입이 제한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지털화를 통해 시청자에게 줄 수 있는 복지는 다양한데, ‘매체균형발전’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를 제한한다는 것은 잘못된 논리입니다.
이남표 박사: 영국의 경우도 고전적인 공영방송(PSB) 체제만으로는 공공성 보장이 어렵다고 보고, 그 대안으로 PSP(Public Service Publisher)라는 개념의 도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매체환경이 상업적으로 재편됨에 따른 대안적 공공서비스 모델로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케이블TV에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김영철 케이블TV방송협회 콘텐츠사업지원국장: 과거 공공적 미디어 서비스를 가르는 기준은 ‘전송수단이 지상파냐 케이블이냐’라든가 ‘유료냐 무료냐’였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다매체 환경에서 미디어의 공공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전송수단이나 유·무료 여부가 아니라 이를 통해 제공되는 콘텐츠의 공익성입니다. 다만 이러한 공적 콘텐츠 제공을 위해 공적 재원 투입과 이용자의 부담을 어떻게 배분할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케이블TV는 전체 채널묶음의 3분의 1 정도를 법으로 정해진 공익채널을 송출하는 데 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케이블TV 자체를 상업서비스라고만 볼 수 있겠습니까?
디지털 전환이 진행 중인 지금, 아날로그 정책과 디지털 정책을 구분해야 합니다. 아날로그방송 종료도, 한미FTA 발효(PP개방)도 2012년부터입니다. 그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일관된 방향 아래 디지털 상황 하의 새로운 원칙을 세워나가야만 불필요한 논쟁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이남표 박사: 좁게 보면 방송시장의 논의이지만 넓게 보면 미디어 환경 일반에 대한 것일텐데, 공익적 미디어 서비스의 영역 설정에 대한 신문업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최진순 한경미디어연구소 기자: 저는 신문업계 종사자이지만 제일 주목해야 할 것은 수용자 입장에서 콘텐츠의 공익성이 얼마나 구현돼왔는가라는 점이라고 봅니다. 매체환경의 변화 속에서 공익적 가치의 변화와 그 기준에 대한 문제는 제대로 논의된 바 없습니다.
일의 선후가 잘못된 거죠. 신문산업은 그동안 가장 풍부한 지식정보 콘텐츠를 제공해왔지만 최근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요. 신문산업이 뉴미디어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재원이 필요하지만 이를 조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미디어 환경변화에 대한 논의에서 신문은 소외돼 있습니다. 올드미디어의 콘텐츠 공공성을 신규 미디어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이상요 팀장: 최 기자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동안의 미디어 정책논의가 언제나 플랫폼 위주, 사업자 위주로 짜여졌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미디어 산업의 궁극적 목표를 ‘식견있는 시민’(informed citizen)의 육성으로 잡고 논의의 초점은 콘텐츠로, 관점은 수용자 복지로 바꿔야 합니다.
김지연 인터넷기업협회 정책실장: 사실 저희 인터넷 쪽에서는 공공성이라는 개념을 거의 쓰지 않습니다. 인터넷 자체가 공공적 보편성이나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내포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인터넷은 고비용을 쓰지 않고, 콘텐츠를 선택함에 있어서 별도의 전환비용을 낼 필요가 없어 자연스럽게 공공적으로 수렴될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융합환경에서 이용자들이 매체들을 넘나들텐데 이 과정에서 전환비용이 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지상파와 케이블TV의 경우 비즈니스 모델이 다른데, 이를 이용자들이 넘나들 때 이용자의 선택에 장애가 있어서는 안될 겁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지금까지의 공공성 논의에서는 누군가가 중앙에서 공공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는 건데요. 제가 볼 땐 공공성의 판단기준은 나라나 문화마다 다르고, 한정된 개념이라는 거죠. 때문에 공공성 판단에 있어서는 매체 간에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남표 박사: 공공성의 내용은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채워나가야 할 부분임은 맞다고 봅니다. 하지만 인터넷 기업들은 공공성의 문제를 이용자에게 맡겨둔다고 하는데, 이는 어떤 의미로 기업에게 맡겨둔다는 것이 됩니다.
인터넷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플랫폼에서 이용자나 사업자에게 맡겨두기만 한다면 우리가 기대하는 수준의 공공성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김지연 실장: 무규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터넷 이용이 일반화된 지금, 관련 규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끌어낼 것이냐는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다만 콘텐츠 육성을 위해서라도 이용자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규제로 가야 하겠습니다. 한국은 신문·방송에 대한 규제가 강력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 영향이 다른 매체에도 미치고 있죠. 다만 개인적으로 공적 영역은 존재해야 한다고 봅니다.
미디어사업 공적신뢰 붕괴
최진순 기자: 현재 미디어 사업자에 대한 공적 신뢰가 무너진 상황이 아닙니까? 어떤 규제가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겁니다.
스스로 보고서를 만들어 공적 서비스를 제시하고 나선 BBC처럼 국내 공영방송 스스로가 자신의 청사진을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업자에 대한 공적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봅니다. 현재 KBS가 KBSi를 통해 유료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KBS가 유료서비스를 통한 사업다각화를 우선해야 했는지, 무료보편 서비스를 견지하는 것이 더 중요했는지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논의의 공개가 없었습니다.
KBS뿐만 아니라 모든 공적 미디어 서비스 사업자들이 그동안 공공적인 콘텐츠와 관련해 시장과 수용자에게 제대로 설명과 대화의 노력을 진지하게 기울인 적이 있습니까?
“매체간 파트너십 형성할 자율기구 만들자”
이상요 팀장: BBC는 전체 재원 중 수신료가 75%, 기타 수입이 25%인데, 기타 수입이 바로 인터넷이나 유료방송에서 벌어들이는 상업적 재원입니다. BBC가 왜 25%를 상업적 영역에 할당했느냐면, 100% 공적 재원에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재원구조의 포트폴리오가 공공성을 위해 더 중요하다는 거죠. KBS의 경우 상업적 활동 자체는 장려하되 광고는 줄여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 견해입니다.
이남표 박사: 공적 서비스의 영역설정에 대해서는 다 이견이 있겠지만, 시장에만 맡겨둬서는 안 될 양질의 콘텐츠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것으로 정리하겠습니다. 다음은 ‘매체간 균형발전’인데, 현재 매체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형태의 진입장벽이 있는데 이에 대한 최 기자의 의견은 어떤가요?
미디어시장 담당부처 제각각
최진순 기자: 신문 중 일부가 이미 TV 플랫폼에 진입해있는 상태인데, 문제는 신문산업 내부의 빈익빈부익부가 심하다보니 신규영역 진출에 있어서도 양극화가 된다는 점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제약을 두더라도 나머지 사업자에 대해선 컨소시엄 구성 등을 통한 신규 미디어 진출을 적극적으로 권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보도채널에 대한 문제인데요. 현재 신문사 계열 PP들도 사실상 보도행위를 하고 있거나 보도채널을 염두에 둔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도채널을 계속 제한하는 것이 실효성이 있는지 좀더 적극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영철 국장: 국가가 이종미디어 사이의 진입을 규제해왔던 것은 근본적으로 자본집단의 진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매체환경 변화에 따라 이종 플랫폼 간 상호진입은 허용하되 미디어를 소유하고 있는 특정 자본의 과도한 지배력을 막기 위한 진입규제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 전제로서는 동일한 시장의 범위를 어떻게 묶을 것이냐는 사회적 룰을 만들어서, 그 결과 여론형성이나 공적 성격이 강하다고 판단되는 영역에 대해서는 규제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남표 박사: 새로운 시장획정의 필요성은 동감하는데 정부 담당부처조차도 단일하지 않습니다. 인터넷은 문화관광부나 정보통신부, 신문은 문화부, 방송은 방송위가 주로 규제하는 상황이지요. 누가 시장획정의 주체가 될 것이냐도 어려운 문제죠. 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한 포털의 경우는 어떨까요?
김지연 실장: 현재 인터넷 서비스의 형태는 완결된 것이 아니고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규제는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려하는 부분은 ‘규제가 필요하다’면서 그 근거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죠. 역기능 때문이라고 할 때 그 근거가 막연할 때가 많아서 논쟁을 하기에 어려운 지점이 있습니다. 예컨대 ‘어떤 역기능을 제한하는 것이 가능하냐’ 여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데 ‘무조건 역기능을 막아야 한다’고 한다면 규제방안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 어렵습니다.
최진순 기자: